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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서 선두는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교차로에 진입해 직진합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이 선두는 아마 공도에서 자전거와 자동차와 부대껴본 경험이 많은 분일 겁니다. 하지만 이분을 뒤따르는 나머지는 공도 주행에 익숙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상황에서 안전한 주행 방법은 팩을 구성한 모든 인원이 교통섬에 올라가지 않고 모두 교통섬 왼편에 나와 맨 오른쪽 차선을 어느 정도 막은 상태로 신호에 맞춰 출발하고 교차로를 지나며 일렬로 정렬해 직진하는 겁니다. 교차로를 지나며 최대한 빨리 가속해 자동차 앞을 유지하되 그 사이에 일렬로 정렬하기도 해야 하죠. 실은 꽤 난이도 있는 동작입니다.

그런데 선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교통섬 위에 올라가 있다가 직진신호로 바뀌자 횡단보도를 건너 횡단보도 앞에 서있던 차량 뒤를 돌아 우회전으로 진입합니다. 일단 이 행동은 잘못됐고 위험합니다. 이 행동을 왜 하는지는 이해합니다. 진행방향에서 횡단보도를 넘어와서 대기하는 차량이 있었습니다. 교통섬 위에서 이 차량을 피하려면 차량의 뒤를 돌아 횡단보도를 건너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자전거에 탑승한 채로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절대로 보행자와 접촉해선 안됩니다. 이게 무섭다면 내려서 끌어야 합니다. 일단 신호대기중인 차량 뒤를 돌았으면 실은 직진하는 차량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회전으로 진입해야 합니다. 하지만 위 상황에서는 선두는 후미가 자신을 바로 따라올 거라고 예상하고 교차로를 지나자마자 도로 가운데로 나갑니다. 이 행동은 후행 차량이 무리하게 자전거를 추월하려다가 뒤따르는 자전거를 위협할 것을 예상하는 방어운전입니다.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 무리를 관찰해보신 적이 있다면 최선두와 최후미가 유난히 가운데로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모두 비슷한 방식의 방어운전입니다. 길 가운데 있는 자전거를 보고 뒤따르는 차량이 속도를 줄일 것을 기대합니다. 만약 제대로 직진신호를 받아 교차로를 지났다면 자전거들이 일렬로 정렬되어 있어야 하고 선두는 이를 확인하면 도로 오른쪽으로 빠져 자동차가 진행하게 합니다. 능숙한 팩은 최후미가 교차로 통과 후 정렬상태를 확인하면 이를 앞으로 빠르게 전달합니다.

하지만 이 의도는 잘 동작하지 않았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후미는 선두와 거리가 생겼고 영상을 찍은 자동차는 선두와 후미 사이에 끼게 됐습니다. 사실 이 상황이면 경험 많은 선두는 자신과 후미 사이에 낀 자동차를 앞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오른쪽으로 피해줘야 하죠. 상황을 보면 이미 후미 중 일부는 우회전으로 진입하면 안될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인도로 진입했습니다. 물론 자전거에 탄 채로 인도에 진입하는 것도 위험한 행동이며 보행자와 접촉하면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도로는 충분히 넓지 않았고 맞은편에서 다른 차량이 진행해 오고 있어 추월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는 자전거가 오른쪽으로 더 피해줄 공간이 나타나거나 다음번 교차로에서 의도적으로 길보다 더 오른편으로 진행하며 차량을 추월하게 해 줘야 하는데 그때까지는 자전거가 길 오른편에 완전히 멈추는 방법을 제외하고는 비켜줄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동차는 이 상황에 경적을 울려버립니다. 이건 내가 여기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위협입니다의미로 헤석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자동차도 자전거도 서로 상대가 거기 있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제 각자의 규칙대로 안전하게 움직이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자동차와 자전거들이 저런 행동을 한 의도를 파악하는건 사실 불가능합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볼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영상의 상황에서 각 사람들이 왜 저런 행동을 했는지 짐작은 갑니다. 안타까운 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공도를 주행하는 자전거들이 공도 주행 규칙을 충분히 이해하고 여기 맞춰서 행동하지 않은 것, 다른 하나는 명백히 피할 공간이 없는 상황인데도 경적을 울린 점입니다. 이건 경적 소리를 듣고 자동차를 인지해 피해달라는 제스처가 아닙니다. 그냥 아무 방법도 없는 상황에 경적을 울려 감히 도로의 유일한 합법적 사용자인 자동차님의 앞을 가로막는 자전거들에 대한 기분나쁨을 표출한 것 뿐입니다. 자전거들이 이 뉘앙스를 몰랐을까요? 아니요. 그러니까 운전자에게 항의한 겁니다. 피할 방법이 없고 서로 상대를 인지한 상황에 울린 경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여기에 더해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 상황을 보고 이들을 밀고 가버려도 된다는 법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어처구니없었습니다. 이게 자동차들의 일반적인 마음가짐일까 하고 잠깐 생각해봤습니다. 그 정도는 아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