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회사

이력서를 보면서 갑갑한 점 중 하나는 제법 오랜 기간동안 일해오신 분이 최근 여러 해 동안 출시작이 없을 때입니다. 구글링을 해도 보도자료 한 두개와 멋진 말이 큼직큼직한 이미지 안에 들어있는 회사 웹사이트 외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회사에 있다가 경영 악화나 팀 해체 같은 이유로 회사를 옮기기를 반복해 지난 몇 년 사이에 공개할만한 결과가 없는 상태로 회사를 옮기려고 시도하고 계실 때가 많습니다. 아직 회사에 재직중이지만 이 회사 역시 보도자료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미루어 머지 않아 이력서의 그 윗줄과 다르지 않은 결말을 볼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합니다.

우리고 알고 있는 모든 거대한 성공 사례는 당연하게도 작은 회사로부터 시작합니다.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 태동기에는 애초에 자금력을 가진 회사들이 있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지금은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않고서는 시장에서 의미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아주 어렵습니다. 모두가 이미 잘 이해하고 있는 대로 게임 산업은 절대적인 흥행산업이고 흥행에 실패하면 다시 도전해볼 이차 시장이 없이 정말 말 그대로 쫄딱 망해야 하는 시장입니다. 이제 이런 실패나 개발 지연에 대응할만한 맷집, 개발력을 확보할만한 구매력이 없다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이 상황은 회사에게도 개인에게도 악순환을 가져옵니다. 자금이 부족한 회사들이 구할 수 있는 인력에는 한계가 있고 이렇게 확보한 인력을 교육할만한 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애초에 이들을 교육해 부족한 자본으로 개발력을 확보할 생각이나 이런 생각을 할만한 스타팅 멤버를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또 이들이 제시하는 금액으로 확보할 수 있는 멤버들은 제한된 자원 속에서 개발을 이어나갈만한 역량을 가지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고객에게 게임을 공개하는 이터레이션을 거치지 않은 상태로 프로젝트 취소를 반복하면서 어떤 회사도 출시경험을 얻지 못하고 어떤 스탭도 고객에게 게임을 공개하고 개선하는 경험과 여기에 도달하는 개발 경험을 갖추지 못합니다.

개발 중단과 경영 악화를 계속해서 겪은 이력서를 긍정적인 시각으로만 볼 수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스탭 개개인에게는 이분들이 고객에게 게임을 공개하고 이를 개선하는 경험을 가지지 못했고 상업용 게임을 공개하는 수준까지 개발하는데 일어나는 온갖 지랄맞은 일들을 겪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이 분들이 제시하시는 경력 기간 전체를 온전히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또 회사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못하고 스폰서가 바뀔 때마다 스폰서의 말 한 마디에 그때그때 사용할 핵심 기술과 장르가 오락가락하기를 반복하며 게임 개발에서 겪는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지 못한 흔적들을 보며 이 역시 제시하신 경력을 온전히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이 상태는 당연히 개인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이 상태로부터 해쳐나오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제대로 된 개발력을 구입할만한 여유가 있는 회사를 거치는 경력 세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위에 이야기한 답답한 상황에 의한 경험 부족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고용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해 주셔야 합니다. 단순히 이전의 성공적이지 않은 프로젝트에서 했던 일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이 부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