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노하우와 패시브 시너지

어제 우연히 클럽하우스에서 주제 없이 이야기하다가 우리가 만드는 제품의 발전은 왜 생각보다 느리며 고객들은 왜 항상 우리들이 소위 양산형 게임을 개발하길 반복한다고 느끼는지를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심지어 같은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더라도 모든 기능을 바닥부터 완전히 새로 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장에 회사에서 이런 상황을 문제로 정의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우리들 각각이 프로젝트로부터 얻은 인사이트를 유지하고 이를 최대한 다음 프로젝트에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회사에 이 상황이 문제라고 지속적으로 어필하는 일이 있을 거고요.

요즘에는 이런 시도를 하는 회사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회사의 종료된 프로젝트들로부터 생산한 아트 리소스들을 모아 종류 별로 내비게이션 하거나 검색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놓고 이를 요청할 수 있는 일종의 통합 카탈로그를 만들어 운영하는 곳도 있고 회사 전체의 프로젝트에 적용할만한 정보디자인 규칙을 정의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또 이전의 한 회사에서는 회사에 있을 거라고 예상하는 다른 팀의 문서를 요청하는 프로세스가 있기도 했습니다. 물론 맨 마지막 사례는 제가 사용을 시도하던 시대에는 원하는 만큼 빠르게 동작하지는 않았지만요.

문득 회사가 항상 자사의 노하우를 프로젝트 종료와 함께 그냥 날려버리지 않도록 액티브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고민을 좀 덜 하더라도 적당한 환경을 구축해 항상 패시브하게 프로젝트의 노하우가 회사 안에 남아 다음에 일하는 사람들이 찾아볼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는 정도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훨씬 상황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프로젝트 산출물을 정리하고 관리하고 배포하고 이런 자료가 존재함을 사내에 지속적으로 알리는 일은 어느 정도 권한을 가진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의지를 가지고 진행하기 전에는 유지되기 아주 어렵습니다. 직접 매출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또 이 업무를 담당할 조직의 성과를 측정하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회사가 예산을 감축해야 할 상황에 목록 위쪽에 올라가기 쉽고 또 이 조직에서 일할 사람들의 경력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회사가 방금 이야기한 여러 가지 문제 대신에 딱 하나, 사내 프로젝트들의 보안 문제를 정리할 수 있으면 단지 회사의 모든 문서관리방법을 한 가지 도구로 통일해 문서들이 반드시 한 곳으로 모이는 상태를 만든 다음 이들이 서로 다른 부서들 사이에 검색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기만 해도 액티브한 방법을 고안해내지 않더라도 서로 다른 부서들 사이에 시너지가 일어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이 주제에 회사가 직접 개입해 문서관리방법을 통합해야 하는 이유는 팀마다 회귀론자들이 있어 아주 작은 기회만 생겨도 과거에 사용하던 훨씬 덜 효율적인 자신에게 익숙한 방법을 사용하길 요구하곤 하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지금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아마 처음부터 의도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우연히 이런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회사에 다른 프로젝트에서 기존에 개발하며 사용한 문서관리도구를 우리 프로젝트에서 함께 사용합니다. 덕분에 서로 상대의 문서를 바로 검색할 수 있어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혹시 누군가 비슷한 일을 시도한 기록을 찾아보고 만약 기록이 있다면 미리 우리가 업무를 진행할 때 미리 주의할 점을 파악한 다음에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잠깐 이야기했지만 여기에도 여전히 어른들의 사정, 특히 보안 문제가 있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쉽지 않을 것임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액티브하게 산출물을 정리하고 관리하며 이를 회사의 적당한 상황에 맞춰 배포하는 것 보다는 단지 도구를 통합하고 이들을 검색 가능하게 만드는 수준의 관리만으로도 패시브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면 이정도는 좀 더 적극적으로 요구할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