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지난 몇 주 사이에 팀에 구인하느라 면접을 자주 보게 됐습니다. 서로 방에 들어가 마스크를 하고 질문을 주고받는 건 처음엔 굉장히 뻘줌할 거라고 생각해 걱정했지만 마스크는 걱정한 것 보다는 면접을 크게 방해하지는 않았습니다. 주니어분들을 만날 때는 예상하던 실수나 산으로 가는 반응이 나와도 뭐 그럴 수 있다 싶어 지나가다가도 예상보다 일한 기간이 훨씬 길고 이제 어느 분야에서든 스탭들을 리딩하는 역할을 할 분이 기대에 못 미치는 말씀을 하시면 면접이 끝나고 나서 갑자기 더이상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지기도 했습니다. 여러 예비 스탭 분들을 만나면서 몇 가지 생각한 점이 있어 남겨둡니다.

대부분 피면접자는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입니다.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는 상황이고요. 말을 많이 하면 반드시 사고가 생깁니다. 면접 자체가 그 사고를 유도하는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만 이 특징은 피면접자에 대한 판단을 어렵게 만듭니다. 이 분이 더 잘할 수 있는데 지금의 상황이나 질문, 분위기 때문에 말이 산으로 가는 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 스타일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예정된 사고를 회피할 수 있는 것도 한 가지 스킬이고 또 이런 상황으로 몰고 가거나 몰고 가지 않는 것은 면접자의 스킬입니다.

누구나 면접에서, 회의에서, 기타 내가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창하게 말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준비 없이 그렇게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적습니다. 사실은 유창하게 말하는 것은 재능이고 이 재능을 가진 사람은 드뭅니다. 내가 유창하게 말할 수 있을 거라 가정하지 않는 편이 안전합니다. 유창하게 말하려고 하는 대신 질문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이 할 말의 주제를 정한 다음 천천히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질문에 빨리 답하기 시작하지 않아도 되고 또 말을 빨리 할 필요도 없으며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한 소재를 끌어들여 말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들의 기억력은 생각보다 나쁘고 피면접자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이 기억력은 더 짧아집니다. 답변이 길어지고 자신이 알고 있는 여러 가지 주제를 이야기하다 보면 처음에 이 말을 시작하게 만든 질문을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원래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부족한 기억력을 보충하기 위해 메모하며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피면접자분들 중 기억력을 보충하는데 메모를 사용한 분은 아무도 없었고 모두가 긴 이야기를 하던 중 질문을 잊어버리고 산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재빨리 붙잡아드릴 수밖에 없었어요. 일할 때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답변을 시작하기 전에 질문을 정리해서 내 언어로 바꿔 재확인해야 안전합니다. 피면접자가 질문을 잘못 이해할 수도 있고 면접자 역시 본인의 의도와 거리가 있는 잘못된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답변이 시작되면 한동안은 답변을 멈추기 어려울 때가 많고 서로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특히 위에서 이야기한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는 더 쉽게 질문을 잘못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질문을 들은 다음 이를 재확인하면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질문을 확인하는 분은 평소 일할 때 도 그렇게 행동할 가능성이 더 높고 이렇게 더 안전하게 일하는 분이라면 믿을만한 분일 가능성도 더 높습니다.

시니어 그레이드로 면접을 진행할 경우 평소에 좀 더 시야를 넓힌 고민을 해 둬야 합니다. 물론 평소에 양산형게임을 정신없이 개발하다 보면 시야가 쉽게 좁아집니다. 심지어는 사고가 도메인에 다다르지도 못하고 당장의 요구사항에만 집중해 그 바깥의 맥락을 잃기도 쉽습니다. 이 상태로 한참을 일하다 보면 그래서 내가 만드는 제품의 시장에서 위치나 이 시장이 국내,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 내가 몸담은 이 업계와 내 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잊기도 쉽습니다. 주니어 그레이드라면 그래도 됩니다. 종종 시야가 너무 좁아져 맥락을 파악하는데 문제가 생길 것 같다면 도와드릴테니까요. 하지만 시니어 그레이드로써 그러면 안됩니다. 물론 우리들의 현실은 그런 더 넓은 고민을 쉽게 잊도록 만들고 또 그런 고민 없이도 개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는 다음으로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만약 생각해본 적 없다면 그렇다고 짧게 답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에 즉흥적으로 좋은 대답을 하는건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시간을 절약하고 다른 특징과 장점을 탐색하는 쪽이 훨씬 좋습니다.

본인의 경험을 설명할 때는 경험의 맥락, 시도한 방법, 결과, 교훈을 포함해야 하고 최대한 과학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해봤다면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그 일이 무슨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지, 시도한 방법은 해결할 문제와 관련이 있어야 하고 그 결과는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 결과 자체를 본인이 평가하고 있어야 하며 그로부터 얻은 교훈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령 아이템 강화 시스템이 이미 만들어져 있었는데 이를 개선하는 일을 했다고 포트폴리오에 적었다 칩시다. 그렇다면 기존 아이템 강화에 무슨 문제가 있어 개선을 하게 됐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지 문서를 펼쳐놓고 개선했다고 해서는 아무런 인상을 줄 수가 없습니다. 라이브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개발과정이 길어져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을 개선할 때에도 개발 진행 후에 원래 목적을 달성했는지 스스로 평가해볼 수 있습니다. 이 전체 과정을 포함해 설명할 수 없으면 포트폴리오는 그저 '오피스를 다룰 줄 아시는군요' 정도의 평가를 받게 됩니다.

텍스트는 말로 옮길 수 있고 또 말을 텍스트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 텍스트를 읽고 쓰지 않는다면 조리있게 말하기 어려워집니다. 간혹 질문과 답변을 시작한지 2분이 채 지나기 전에 이 분은 평소에 텍스트를 거의 읽지 않는 분일 것 같다는 예상을 한 다음 나머지 시간에 다른 장점을 탐색하기 위해 절망적으로 면접을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말을 잘 하는 것과는 달리 그 말에 의도와 의미를 담아 전달하는 것은 평소에 의미있는 텍스트를 얼마나 접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게 뭐든 수준 있는 텍스트를 읽어두면 이런 참사를 줄일 수 있습니다.

본인이 포트폴리오에 제출한 문서 목록을 기억해두거나 가지고 있는 편이 좋습니다. 포트폴리오에 대한 질문을 할 때 피면접자가 본인이 제출한 문서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서로 곤란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스크린에 문서를 띄우고 질문을 할 때도 있습니다만 웬만하면 스스로 제출한 문서 목록과 각 문서를 첨부한 본인의 의도를 기억하고 있으면 서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질문을 메모하면 좋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포트폴리오 목록 역시 적어두고 질문을 받은 다음 어느 자료인지와 질문을 재확인한 다음 답변을 시작한다면 서로 훨씬 더 안전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만드는 제품의 본질은 엔터테인먼트이고 그 하위 분류 중 하나인 게임입니다. 국내 시장이나 세계 시장에 어떤 게임들이 고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경제적인 실적을 내는지 알아보고 그 게임들을 플레이해보거나 그들에 대한 정보, 본인의 평가를 가지고 있는 편이 좋습니다. 사실 일 하다 보면 시간이 부족해 이 모든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보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저희도 똑같은 신세이기 때문에 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프로로써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 우리가 출시할 시장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어떤 제품을 내놓는지, 각 제품이 어떤 평가를 받으며 그 원인은 뭘지 평소에 생각해놓은 다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양산형 게임이 널려있고 이들을 별로 평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고객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