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결론: 현대 한국의 사무공간에 알맞은 휴게공간은 라운지가 아니라 화장실입니다.

여러 회사 소개를 보면 종종 넓고 밝은 라운지 사진을 걸어두곤 합니다. 푹신한 소파와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의자와 테이블, 침착한 색으로 칠한 벽에 걸린 이름모를 그림과 거대한 통유리 밖으로 보이는 어느 계절에 찍었는지 모를 푸른 하눌과 따뜻한 조명, 벽돌 느낌으로 마감한 포인트까지.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내 조건반사적으로 코끝에 커피향과 아침나절에 드나드는 사람들로 가득한 카페 소음이 들려올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회사에 있다 보면 이 공간은 휴식과는 거리가 멉니다. 항상 미어터지는 회의실을 당장 예약하는데 실패해 회의자료를 대충 랩탑에 쓸어담아 모든 사람의 소품을 올려놓기에는 좁아터진 동그란 테이블에 랩탑 하나만 덩그러니 올려놓고 다들 무릎에 나머지 소품을 올린 채 회의하는데 사용합니다. 한편 구석에 푹신한 의자에 몸을 파묻고 뇌를 재시작하던 사람들은 이내 재시작에 실패하고 주섬주섬 넝마조각처럼 구겨진 몸을 일으켜 라운지 밖으로 사라집니다. 다른 누군가는 창밖을 바라보는 높은 스툴에 앉아 모두에게 등을 보인 채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스마트폰 화면을 꺼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이 공간은 사진으로 볼 때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회사에서 이 공간은 불편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을 정말로 쉴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익명성과 보안이 유지되지 않는 공간입니다. 회사 바깥의 카페에서 한 숨 돌릴 수 있는 이유는 그 공간이 회사와 달리 익명성이 좀 더 유지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지나가는 다른 사람이 내 랩탑을 잠깐 봐도 서로 참견하지 않고 이해하지 않으리라는 암묵적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커피 대신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던 옆사람이 옆건물 4층에 있는 사람이라고 눈치채더라도 입밖에 내지 않고 눈길도 주지 않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쉴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이 조건을 만족하는 공간은 화장실입니다. 라운지만큼 편안한 의자는 없고 공기에 섞여 흐르는 것은 커피색상과 비슷하지만 커피향과는 거리가 멉니다. 조명은 훨씬 차갑고 기온도 낯섭니다. 하지만 이 공간은 스마트폰에 코를 묻고 뭘 보고 있어도 등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뇌를 재시작하는데 몇 분이 걸려도 방해받지 않습니다. 내 쉬는 모습을 전시하지 않아도 되고 익명성 없는 공간에서 시시각각 나를 찾아올 사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현대 한국의 사무공간에서 스탭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은 화장실입니다. 라운지보다 더 많은 화장실에 투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