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디아블로 이모탈은 포션 갯수가 제한되어 있나요?

왜 디아블로 이모탈은 포션 갯수가 제한되어 있나요?

개인적으로 디아블로3의 아트 스타일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 스타일을 선택했는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플레이 하는 내내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전 디아블로들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우중충한 색감을 보여줬습니다. 첫 디아블로는 256색상을 사용해야 했으니 어쩔 수 없이 어둡고 칙칙한 느낌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면 디아블로2는 상대적으로 밝은 액트2 그래픽도 특유의 제한된 색감으로 표현해냈습니다. 반면 디아블로3은 상당히 화려해졌는데 덕분에 온갖 던전의 다양한 모습을 폭넓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대신 디아블로 특유의 분위기를 썩 성공적으로 살려내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디아블로 이모탈은 디아블로3의 색감에 훨씬 가깝습니다. 일단 그래픽에서 보이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게임을 플레이해보면서 마음에 드는 색감을 보여주던 디아블로2와 비교해 전투에서 보여주는 차이 중 하나는 포션입니다. 이전에는 마을에서 포션을 잔뜩 구입해 허리띠에 여러 줄 쟁여 놓고 플레이 했습니다. 포션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 기본 포션은 쿨타임이 없어 사용 즉시 체력을 회복했습니다. 보스전에 허리띠 인벤토리에 쟁인 포션을 다 쓰면 재빨리 화면 구석으로 도망쳐 보스가 나에게 달려들기 전에 재빨리 인벤토리를 열고 포션을 허리띠로 옮기는 짜릿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모바일 디아블로는 이럴 수 없게 됐습니다. 체력포션 갯수가 고정되어 있고 이를 내가 구입해서 늘릴 수도 없습니다. 마을에 돌아가거나 중간 보상을 통해 다시 채울 수 있을 뿐입니다. 이전과 비교해 왜 이런 차이가 있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크게 두 가지 접근에 따른 결과입니다.

첫째. 컨텐츠에 도전하는 방법을 달리 정의합니다. 허리춤에 찬 포션을 쿨타임 없이 소모하는 방식은 컨텐츠에 좀 더 공격적으로 접근하게 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보스전에서 구석으로 도망쳐 체력을 회복하는 꼼수를 사용할 여지를 주고 마을에서 한 번 재정비한 다음 포션을 완전히 소모할 때까지를 한 세션이라고 할 때 플레이하는 목적을 한 세션 안에 최대한 먼 곳까지, 최대한 오랫동안 사냥해 최대한의 보상을 획득하는 것으로 만듭니다. 반대로 이모탈처럼 포션 수량이 고정되어 있다면 한 세션의 목적은 포션을 완전히 소모하기 전에 이번 세션을 마치는 것입니다. 현상금 사냥을 통한 필드 플레이나 균열을 통한 던전 플레이 모두 1회 플레이 시간이 상당히 짧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게임을 모바일로 만들면서, 또 현대의 플레이어들의 성향에 맞추면서 일어나는 당연한 변화인데 여기에 클래식 디아블로 스타일로 포션을 제공하면 짧아진 세션의 난이도를 조절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포션을 이모탈 스타일로 제한합니다.

둘째. 기본적인 골드 사용처가 변화했습니다. 클래식 디아블로에도 디아블로 이모탈에도 겜블링을 통해 골드 대량 소모처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클래식 디아블로에서는 허리춤에 포션을 가득 채워넣으면서 골드를 쏠쏠하게 사용합니다. 한 세션에 최대한 멀리까지 이동하려면 마을에서 남은 골드를 탈탈 털어 포션을 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벤토리의 모든 포션이 장비로 바뀌기도 전에 어중간하게 포탈을 타고 마을에 돌아와 재정비해야 합니다. 상당히 귀찮은데다가 파티 플레이 중이라면 민폐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긴 세션에 대비해 골드를 털어 포션으로 바꾸면서 겜블링을 시도하기 전에도 골드를 쏠쏠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모탈에서는 컨텐츠 별로 확보할 수 있는 재화를 최대 20가지 이상으로 구분해 놓고 컨텐츠 종류에 따라 정확히 설정된 재화를 보상으로 주고 이 재화의 사용처 역시 정확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또한 플레이어캐릭터들 사이에 재화를 주고받을 수도 없습니다. 때문에 클래식 디아블로에서처럼 포션을 통해 기본적으로 공통 재화인 골드를 소모하도록 설계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골드를 공통재화 관점으로 접근했다면 이모탈에서 그 많은 종류의 업그레이드마다 서로 다른 재화를 요구함과 동시에 골드를 요구했을 겁니다. 무기 업그레이드에도 골드를, 보석 제작에도 골드를 요구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 성장 액션마다 요구 재화가 완전히 구분되어 있고 골드를 사용하게 하고 싶으면 이번에도 겜블링을 통하면 됩니다. 아니면 골드를 쌓아두도록 그냥 놔둬도 인플레이션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때문에 굳이 골드로 포션을 구입하게 해 계속해서 골드를 소모하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