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형 위키를 쓰며 느끼는 관리방법의 충돌

계층형 위키를 쓰며 느끼는 관리방법의 충돌

어느 날 링크 기반으로 사용하던 문서를 계층형으로 정리해 달라는 요청을 수행하다가 문득 모든 문서가 같은 계층에 있고 서로의 링크만으로 관리되던 클래식한 위키 사용 방식에 익숙했는데 현대의 위키 소프트웨어에 문서를 계층으로 구성하는 기능이 들어가면서 링크와 계층구조를 함게 관리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주로 사용하는 컨플루언스와 노션 모두 문서를 계층으로 관리할 수 있지만 오래 전부터 위키를 사용하던 습관 때문에 계층을 어느 정도 따르기는 하지만 문서가 어느 계층에 속하는지에 신경쓰기 보다는 문서의 링크가 있으면 문제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제 생각과 계층에 따른 정리 방법을 각각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맨 처음 위키위키를 사용하던 시대에는 모든 문서가 같은 공간에 있었습니다. 아마도 모든 문서는 파일시스템 상 같은 디렉토리에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이전 시대에는 문서를 생성할 때 문서 위치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위키 상의 모든 문서는 같은 공간에 있었으므로 그냥 문서를 만들었습니다. 문서의 맥락은 문서를 향한 링크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는 문서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으면 다른 문서에 링크했습니다. 목적을 가진 목록에 링크되어 있으면 링크된 문서는 이 목적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위키에서 문서를 정리한다는 말의 의미는 링크를 유지보수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링크가 없는 문서를 찾아 다른 문서에 링크하고 없어진 문서의 링크를 제거하고 새로운 목적을 가진 문서를 만든 다음 여기에 이전 문서들을 연결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 문서에 계층을 만들 수 있는 위키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근 십 수년 사이에 사용해본 적이 있는 미디어위키, 도쿠위키, 컨플루언스, 노션 모두 문서를 계층구조로 생성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상위 문서는 문서이면서 동시에 디렉토리 역할을 합니다. 도쿠위키에서는 실제 파일시스템 상에 디렉토리를 생성하기도 하고요. 이때부터 문서를 만들 때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이전에는 일단 같은 공간에 문서를 만든 다음 이 문서가 어디에 링크될지 고민하거나 새 문서가 링크될 문서에 먼저 링크를 만들고 링크를 눌러 문서 작성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새 문서를 생성할 때 어느 계층구조에 속해야 할 지 고민해야 합니다. 대신 계층구조 덕분에 링크가 없어도 계층구조만으로 맥락을 설명할 수 있고 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제 문서로 향하는 링크가 없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오래된 위키를 사용하던 습관과 계층구조로 관리하는 요구사항이 서로 충돌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컨플루언스는 계층구조로 문서를 생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전 습관 때문에 여전히 계층구조는 최소한만 신경 쓰고 있습니다. 여전히 위키에 작성한 문서는 링크에 의해 관리되고 설명된다고 생각합니다. 문서가 계층구조 상 어디에 있든 접근 가능한 유효한 목록에 포함되어 있기만 하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계층구조로 관리하는 방법도 유효합니다. 문서를 파일로 만들어 저장하던 시대로부터 이어진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서는 파일시스템 상의 ‘파일’ 형태였습니다. 문서를 분류하려면 특정 디렉토리에 직접 저장해야 했고요. 한 문서 파일이 여러 디렉토리 분류에 포함되지 않도록 디렉토리 구조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계층구조 관리 목표였습니다. 윈도우 계열에서는 윈도우 95부터 바로가기 파일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이전만큼 계층구조 상에 파일을 저장할 때 여러 계층구조에 포함되지 않도록 관리할 이유가 줄어들었습니다. 한 파일이 바로가기를 통해 여러 디렉토리에 포함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계층구조 관리 습관을 위키로 가져오면서 처음부터 위키를 통해 문서를 관리하던 습관과 충돌하는 것 같습니다.

위키위키의 태동기부터 사용하던 습관은 문서의 위치나 계층구조에 별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문서가 어디에 있든 링크만 있으면 됩니다. 계층구조의 핵심은 문서가 실제 계층구조에 의해 분리되는 것입니다. 문서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링크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고요. 계층구조 관점에서 단일 공간에 모든 문서가 모여 있고 링크로 관리되는 형태는 무질서하고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보일 수 있습니다. 또 전통적인 위키 관리 관점에서 계층구조는 문서들을 서로 단단히 힝크할 부담을 줄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관점에서는 여전히 문서가 계층구조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요구사항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현대에는 전통적인 위키로부터 온 문서 정리 관점과 전통적인 파일시스템으로부터 온 문서 정리 관점이 이를 둘 다 지원하는 문서관리도구를 운용할 때 충돌합니다. 계층형 관리는 링크를 철저하게 유지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계층형 구조는 오히려 현재 문서로부터 파생되는 문서를 작성할 때 현재 문서의 하위에 작성해 느슨한 계층구조를 관리할 수 있게 되는 장점도 있습니다. 링크만으로 관리하던 목록을 실제 계층구조를 복제한 목록으로 바꾸면서 이런 충돌 때문에 노션에서 하위 페이지 목록을 삭제하는 동작이 실제 하위 문서를 삭제하는 동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