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숫자를 많이 보여줄까요?

왜 숫자를 많이 보여줄까요?

인게임에 숫자가 나오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요구사항을 받았습니다. 언듯 생각해보니 마인크래프트에서 몬스터를 공격하고 등급이 높은 광물을 채광하는데 다이아몬드 곡괭이를 사용하는 등 숫자가 필요할 것 같은 메커닉을 플레이하면서도 숫자를 본 기억이 없었고 그 경험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숫자를 표시하지 않는 게임 특성을 생각하다가 이를 정리해 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주제는 ‘왜 숫자를 많이 보여줄까요?’ 입니다. 숫자를 많이 표현하는 게임은 왜 그 많은 숫자를 보여주려는 걸까요.

이전에 만들던 모바일 게임들은 개발자도 플레이어도 숫자에 굉장히 민감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작은 능력치 차이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감수했습니다. 플레이어가 한 노력의 결과로 스테이터스가 올라가면 이를 잘 표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계산되어 나온 최종 숫자가 얼마이고 이 숫자를 만드는데 어떤 근거들이 작용했는지를 표시했습니다. 캐릭터, 장비, 보석, 길드버프, 유료버프, 이벤트버프 등이 있었는데 이런 요인들이 합쳐져 최종 결과가 됐음을 알려주고 새로운 요인을 추가하거나 각 요인을 편리하게 개선하는 인터페이스를 설계했습니다. 자원을 투입해 올릴 수 있는 숫자를 쉽게 찾고 자원을 투입할 곳으로 쉽게 안내했습니다.

성장이 핵심 목표인 게임은 크게 두 가지를 신경 씁니다. 첫째. 숫자 자체의 상승을 플레이어에게 인식 시킵니다. 힘이 2 올랐다면 오른 순간에도 표시하고 능력치 화면에도 표시하고 몬스터와 나 사이의 강함을 나타내는데도 표시하고 전투력을 계산하는데도 표시합니다. 둘째. 숫자가 상승한 결과를 게임으로부터 체감하도록 합니다. 이는 흔히 성장체감이라고 하고 엄청나게 중요한 요소입니다. 공격력이 분명 올랐는데 전투가 이전과 똑같다면 실망스러울 겁니다. 성장체감의 훌륭한 사례에는 리니지 시리즈의 공격력과 방어력 차이에 따라 소위 칼이 안 박히는 사례가 있습니다. 이는 종종 암 걸릴 것 같은 경험을 주지만 칼이 박히기 시작하는 순간에 강렬한 경험을 줍니다.

숫자를 안 보여주는 게임에는 마인크래프트가 있습니다. 맨손으로 나무를 부술 수 있습니다. 또 나무곡괭이로는 다이아몬드를 캘 수 없습니다. 이런 차이들은 게임 전략을 수립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이런 동작을 분명 내부에서 숫자로 처리하고 있을 테지만 게임 상에 노출하지는 않습니다. 마인크래프트 장비는 성장요소가 없습니다. 상위 장비로 교체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공격력 1% 상승’ 같은 숫자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요소가 없습니다. 숫자를 노출하지 않고 이를 인게임에서 체감 시킬 방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게임에서 숫자를 많이 보여주는 이유는 비효율 성장 구간의 성정체감을 만들기 아주 어렵기 때문입니다. 성장을 메인으로 하는 게임에는 크게 세 가지 성장요소가 있습니다. 선형성장, 계단성장, 비효율성장. 선형성장은 플레이에 따라 짧은 간격으로 성장하는 요소입니다. 짧은 간격으로 더 좋은 장비를 얻어 공격력이 오른다면 이를 선형 성장입니다. 계단성장은 좀 더 큰 간격으로 일어나는 성장입니다. 레벨이 오르며 힘이 2 증가한 결과 공격력이 올라 몬스터를 좀 더 빨리 잡게 됐다면 이는 계단성장입니다. 마지막으로 비효율 성장은 엔드게임 단계에서 많은 자원을 요구하지만 체감이 잘 안되는 성장요소입니다. 한때 수집형 게임에서 ‘별자리’ 모양으로 많이 나타났고 최근 플레이한 디아블로에는 ‘정복자 레벨’로 나타납니다.

이들은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을 요구하지만 컨텐츠 대부분에서 잘 체감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숫자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PvP에서는 차이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비효율 성장 구간은 컨텐츠 대부분에서 즉각적인 성장체감이 어렵기 때문에 숫자를 직접 표시해야 합니다. 공격력을 1% 올린다면 전투구간 및 비전투구간을 합치면 거의 체감할 수 없습니다. 숫자를 표시하지 않으면 내 플레이에 효과가 있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게임에 숫자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비효율 성장 요소를 아예 넣을 수 없습니다.

결론. 숫자를 많이 보여주는 이유는 게임 상에 선형 성장 및 비효율 성장 요소가 있는데 이들을 플레이에 따라 체감하도록 만들기 아주 어렵기 때문에 숫자를 직접 표기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