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를 어떤 도구로 써야 할까

문서를 어떤 도구로 써야 할까

오늘(2022년 8월 15일)을 기준으로 한 최근 제 트위터 타임라인은 특정 업계에 이력서를 어떤 파일 포멧으로 제출할 지에 대한 이야기로 따뜻해진 상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정답이 있는 주제가 이렇게 타임라인을 따뜻하게 만들 일인가 싶지만 어떤 분들 입장에서는 아직 정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생각하는 이 문제, ‘문서를 어떤 도구로 써야 할까’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문서는 사용될 환경과 문서를 사용할 사람에 따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문서를 볼 환경에 따라 종이에 인쇄해 페이지 단위로 볼 것을 고려한 전통적인 문서, 그리고 모니터를 통해 아래에서 위로 스크롤 하며 볼 것을 고려한 문서가 있습니다. 또 문서를 볼 사람에 따라 문서를 공유 받은 사람의 환경에서 보여야만 하는 문서가 있습니다. 문서를 작성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정보의 기록과 공유이기 때문에 문서를 공유 받아 읽을 환경과 사람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지금은 제법 개선되는 분위기이지만 전통적인 문서 작성 습관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점들이 있습니다. 오래된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따던 시대로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유지되는 습관들인데요, 위키에 문서를 작성하면서도 섹션마다 번호를 매기려고 노력하거나 - 위키 대부분이 이를 지원하지 않음 - 당구장 문자나 손가락 문자를 사용하거나 이유 없는 문단나눔과 밑줄을 통한 강조, 그리고 문서 도구에서 지원하는 의미론적 섹션 구분 기능 대신 직접 폰트 크기와 정렬을 조정한 섹션 타이틀 같은 것들입니다.

이들 중 최고는 필요 이상으로 테이블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테이블을 원래 목적을 초과해 레이아웃에 적극적으로 사용되곤 하는데요, 이들은 일시적으로 문서를 정돈된 모양으로 보이는데 도움을 주지만 현대에 문서가 다양한 환경에서 읽히는 상황에서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인쇄 환경이나 모니터 열람 환경에서 테이블은 순식간에 망가져 의도 대로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테이블의 올바른 사용 수준은 노션의 빈약한 심플 테이블과 이를 보완하는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잘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미지나 영상, 3차원 그래픽 같은 분야에서는 편집 포멧과 배포 포멧이 별도로 발달했습니다. 이들의 용량 차이로 인한 스트리밍 요구사항 때문인데요, 문서는 이들보다는 용량이 작기 때문에 편집 포멧과 배포 포멧이 더디게 발달했습니다. 현대의 PDF 포멧은 간신히 종이에 인쇄할 것을 고려한 문서를 공유하기에 적당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현대에 브라우저를 통해 열린 PDF는 확대 배율에 따라 썩 아름답지 않게 그려질 뿐 아니라 이미지, 링크 같은 요소들이 작성할 때와 다른 모양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현대에 당연하게 활용되는 애니메이션과 동영상을 포함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제약으로 인해 PDF가 문서를 공유 받을 설득의 대상이 열어볼 수 있을 가능성이 높은 포멧으로 예상되더라도 이를 사용할 의사결정을 하기 쉽지 않습니다.

공유할 문서를 작성할 때는 문서의 목적에 집중해야 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문서는 필요 이상으로 상대에게 맞춰야 합니다. 오래 전에 팀에는 모니터로 문서를 읽지 못하는 팀원이 있었습니다. 이 분에게는 기획서를 작성해 주소를 보내는 것 만으로는 일을 진행할 수가 없었는데 결국 문서를 인쇄해 들고 가서 그 분 옆에 앉아 손가락으로 문서를 짚어 가며 하나 씩 설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은 그 때는 황당함을 넘어 모멸감마저 느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문서의 다양한 열람 방법 중 하나일 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 문서를 통해 원하는 바를 달성했을 뿐이었고요.

이런 관점에서 설득 대상인 상대가 읽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포멧을 사용하는 위험을 무릅쓸 이유는 별로 없습니다. 분명 이렇게 질문하실 수 있습니다. 관공서는 항상 내가 읽을 수 없는 포멧을 사용하지 않느냐고요. 관공서 입장에서는 뷰어를 다운로드 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제조사의 멍청한 폼을 작성해야 하는 우리들이 설득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리들이 그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문서를 제출할 학교와 관공서와 교수가 우리들이 설득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문서를 통해 상대를 설득하길 원한다면 상대에 맞춰야 합니다. 상대가 읽을 수 없을 가능성이 높은 포멧을 사용하는 모험을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포멧으로 문서를 받기를 원한다면 이를 문서를 통해 제안해야 하며 이 과정 역시 상대가 편리하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포멧을 통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규격화된 제출을 원한다면 규격화된 접수 시스템을 갖추거나 이를 지원하는 외부 서비스를 통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업무용 문서는 전통적인 워드프로세서나 간이 DTP 소프트웨어를 떠날 때가 왔습니다. 현대의 문서는 권한을 가진 대상에게 편하게 공유되고 현상을 반영해 빠르게 수정되며 관련된 문서끼리 적극적으로 연결되고 또 기계가 읽기에도 적당해야 합니다. 전통적인 워드프로세서나 간이 DTP 소프트웨어는 그 스스로 이 요구사항 중 어느 것도 달성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