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메타버스의 정의에 대해 좀 더 막나간 생각을 해봅시다. 지난번 여러 세계 사이에 물건 호환을 쓰면서 메타버스의 정의를 단일 세계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일 세계는 전통적인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과 구분할 수 없습니다. 게임형 가상 세계라는 정의에는 어느 정도 부합하지만 이는 전통적인 게임을 구성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또한 게임이 아닌 서비스 역시 이 분류에 쉽게 포함될 수 있습니다. 메타버스라는 개념 이전에도 슬랙을 통해 의사소통하고 노션을 통해 지식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이들 역시 형태가 좀 다를 뿐 가상 세계라고 정의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종종 블록체인에 연동된 세계를 메타버스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게임 경제 일부가 블록체인에 노출된 형태이더라도 여전히 메타버스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종종 경제시스템이 블록체인을 통해 세계 외부에 노출된 형태를 아주 초보적인 상호 호환성으로 보고 메타버스의 정의에 포함 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전통적인 게임들이 이미 달성한 게임 내 화폐나 아이템이나 캐릭터를 법정화폐를 통해 거래하고 법정화폐를 통해 다른 게임의 경제에 접근하는 경험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메타버스는 최소한의 외부 서비스를 통해 게임 외부와 상호 호환을 달성하는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메타버스의 정의가 ‘현실 세계’와 호환성을 가지는 가상 세계라면 현실 세계 역시 가상 세계와 비슷한 분류의 한 세계일 뿐으로 서로 호환성을 가지는 여러 가상 세계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굳이 블록체인을 끌고 들어오는 이유는 최소한의 외부 서비스 역할을 블록체인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게임이 상호 호환을 달성하는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메이플스토리를 접고 로스트아크를 시작하려면 처음부터 새로운 아이덴티티와 새로운 경제력으로 새 게임을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기존 세계에 이미 달성해 놓은 경제력을 새로운 세계에 어느 정도는 가져오고 싶을 겁니다. 중앙화된 외부 서비스를 통해 이전 세계의 재산을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정리해 법정화폐로 교환한 다음 이를 새로운 세계에 투자해 아이덴티티와 경제력을 어느 정도 달성한 상태로 새로운 세계에서 플레이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전 세계에서 얻은 의미 있는 경험과 이를 기록한 업적과 아이템과 캐릭터는 다른 세계에 전혀 호환되지 않습니다. 스크린샷, 영상, 글 같은 다른 매체를 통해 경험을 공유할 수는 있지만. 여기에는 각각의 매체를 서빙하는 다른 서비스가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블록체인을 통해 상호 호환을 지원하는 세계를 생각해 봅시다. 우선 이전 세계에서 구축한 아이덴티티와 경제력은 이미 블록체인을 통해 외부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높은 확률로 이미 내 지갑에 연결된 토큰 모양일 헙니다. 이들은 게임 서비스의 존속과 무관하게 내 지갑과 블록체인 상에서 유지됩니다. 다만 이들의 가치는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들이 원래 생성된 세계에서 가장 큰 쓸모와 가치를 가집니다. 이전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이동할 때 이전 세계에 보유한 돈을 새로운 세계에서 사용할 돈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다른 서비스를 통해 중간에 법정화폐를 거쳐 교환했다면 이번에는 블록체인 상에서 두 세계 사이에 사용되는 서로 다른 토큰을 교환하는 이른바 스왑 서비스를 통합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이전 여러 세계 사이에 물건 호환에서 설명한 대로 토큰의 공통 속성을 통해 아이템 모양으로 다른 세계에 나타나고 이를 실제 동작하는 형태로 구현하는데까지는 사람이 직접 노가다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생각 끝에 메타버스는 한 세계의 경제가 블록체인에 연동되어 있다고 해서 메타버스로 정의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메타버스는 뭔가의 방법을 통해 다른 세계와 호환성을 가지는 세계입니다. 때문에 한 세계 혼자서는 이 세계의 구성요소 상당수가 블록체인 같은 다른 서비스에 호환성을 가지는 외부 기록매체에 연동되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메타버스임을 입증할 수 없습니다. 메타버스가 메타버스로써 정의되려면 자기 자신과 호환되는 다른 세계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