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대한적십자사에서 하는 심폐소생술 강습에 다녀왔습니다. 주말 아침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항상 늦잠이었는데 전날 밤에 다음날 늦잠을 못 잘 생각을 하니 조금 후회됐습니다. 내가 뭐라고.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이런 걸 한다고 했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거리 자전거를 타면 종종 사고 소식을 듣곤 합니다. 주로 낙차 사고나 자동차와 충돌 사고이지만 종종 사망 사고도 포함되어 있어 항상 조심해서 가늘고 길게 오래 타자고 다짐하곤 합니다. 이런 사고 소식에는종종 심정지 사고도 있습니다. 워낙 장거리를 타다 보면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라 무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지인으로부터 심폐소생술 강습을 받자는 권유를 받았는데 그때는 사실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심폐소생술은 민방위()교육때 배운 적이 있는데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많고 실습 환경은 열악했고 우리들은 교육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며 강사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배웠지만 금새 할 수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2년 10월의 한국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 날 집에서 무서운 소식과 영상을 연달아 접하고 마음이 아주 무거워졌습니다. 2014년 4월의 어느 날에 느끼던 무력감, 지금 고작 일이십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별 일 없이 생활했지만 한동안 꼭 그 생각을 하지 않아도 밤에 잠이 잘 안 왔습니다. 실은 그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그 무서운 영상을 재생하지 않고 피해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다시 영상 하나를 보게 됐습니다. 그날 폴리스라인 뒤쪽으로 민간인들이 정리된 상황에서 구조대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폴리스라인 가까이에 나타나 군인이나 간호사, 심폐소생술 가능한 민간인이 있으면 들어와 도와 달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나온 듯한 차림인 사람들과 코스츔을 입은 분들이 폴리스라인 안쪽으로 달려 들어가며 영상이 끝났습니다. 영상을 보고 문득 만약 내가 저 상황에 놓인다면 저 때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습니다. 지금의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올바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을 밤중에 봤기 때문에 밤에 바로 뭔가를 결정해서 실행하는 건 좋지 않았습니다. 밤에 뭘 결제하면 나중에 꼭 후회하곤 했으니까요. 다음날 점심때 밥 먹은 다음 배가 빵빵한 상태에서 생각해본 다음 여전히 충동적으로 강습을 신청했습니다. 별 이유는 없고 어제 밤에 본 그 영상의 상황이 내 앞에서 일어난다면 심호흡 한 번 하고 앞으로 나설 용기와 쓸모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신청하고 두어 주가 흐르는 사이에 괜한 짓을 했나 하는 생각과 그냥 늦잠 자는 편이 나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여튼 토요일 아침 일찍 집에서 꽤 떨어진 적십자사 지사에 찾아가 강습을 받았습니다.

이론 수업을 들어 보니 오래 전에 배운 것에 비해 강조하는 부분과 절차가 조금씩 달라져 있었습니다. 일단 이전에 배울 때와 비교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스스로의 안전이며 현장의 안전을 확보한 다음에야 진입해야 하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민방위교육 때 배운 절차에는 없었던 기억입니다. 또한 주변 상황을 확인하고 내가 판단한 안전 상태를 복창해 주변에 내 진입을 선언하는 효과도 있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이전에는 가슴압박과 인공호흡이 한 세트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인공호흡 절차가 없어져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더미 얼굴에 종이를 대고 인공호흡을 연습했었습니다. 하지만 인공호흡은 도구를 갖춘 훈련 받은 전문 의료인이 수행할 때 의미 있을 수 있지만 우리들 같은 민간인이 효과적으로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특히 기도확보가 어려우며 심폐소생술을 수행하는 사람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아예 절차를 생략하도록 변경된 것 같습니다.

의식을 확인하는 단계에서는 환자를 흔들거나 뺨을 때리는 대신 가장 단단한 어깨뼈를 손가락으로 때리며 큰 소리로 질문하도록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차 부상을 막기 위한 행동이라고 합니다. 또 환자의 호흡을 확인하는 절차 역시 환자에게 손을 대지 말고 눈으로만 확인하도록 바뀌었습니다. 호흡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회피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건 평소에 숨 쉬는 사람을 관찰해 버릇 해야 익숙해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정식으로 훈련 받지 않았고 또 구조 의무가 없는 우리들 같은 민간인이 수행할 수 있는 임무의 한계를 명확히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의 범위는 먼저 119에 신고하고 주변에 보이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전문 구조요원이 도착해 환자를 인계하는 순간까지만 관여하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환자를 옮기려 하거나 환자를 움직이거나 내 스스로 도움을 청하러 돌아다니거나 기구를 사용하려 하는 것은 민간인인 내 임무 범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와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또 법률상 내 행동이 일으킬 수 있는 여러 결과가 어느 정도 보호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더라도 내 행동에 의해 환자가 살 수 있을지는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다만 전문 구조요원에게 인계할 때까지 시간을 벌고 전체적인 생존 확률을 ‘약간’ 올리는데 기여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짧은 시간과 그 작은 확률을 올리는데 필요한 행동입니다. 또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현장을 등지고 둘러 서 달라고 요청하고 여분의 옷이 있는 사람들에게 환자를 덮어 달라고 말하는 절차도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실제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규칙이 변경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더미에 제법 긴 시간에 걸쳐 실습할 수 있어 좋았지만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트위터에서 본 다른 분이 참여하신 다른 강습에서는 영아 더미를 사용해서 실습 했다고 하던데 제가 참여한 강습에서는 성인 더미만 가지고 실습했습니다. 나중에 정리할 때 보니 창고에 영아 더미도 있어서 더 아쉬웠습니다. 또 심장충격기를 켜서 어떤 지시가 나오는지, 또 실제 사용하지 않더라도 패드를 붙여보는데까지는 해봤으면 좋겠다는생각이 들었지만 심장충격기를 만져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더미는 가슴을 압박할 위치를 잡는 요령을 배우고 압박할 깊이와 압력을 감각적으로 익히는데 도움을 주지만 상체만 있어 실제 상황과는 꽤 달라 당황할 것 같습니다. 특히 더미는 팔이 없는데 실제 상황에서는 환자의 상체와 나 사이에 환자의 팔이 있을 겁니다. 내 상체 힘으로 압박하기 위해 올바른 자세를 취하면 내 무릎과 더미 사이에 환자의 팔이 들어가는 정도의 공간이 생기기는 하지만 실제와 좀 더 비슷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더미에 팔이 달려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미는 남성형만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여성형 더미를 실습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또 더미는 모두 같은 크기인데 실제 상황이라면 사람은 모두 크기가 다를 겁니다. 때문에 압박 부위를 감각적으로 찾아내려면 크기가 서로 다른 더미가 있었더라면 좋았겠다 싶습니다.

심폐소생술 실습 후에는 기도폐쇄에 대응하는 요령을 배우는데 이때는 사람의 전신이 필요했기 때문에 강습에 참여한 다른 분과 번갈아가며 실습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의식이 있어 스스로 몸을 가누고 있기 때문에 완전기도폐쇄 상황이 되어 복부압박을 시행하고 가슴압박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실제 팔다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면 굉장히 당황하거나 머리를 부딪치게 하는 등 실수할 여지가 많아 보여 아쉬웠습니다. 실제 무게에 가까운 팔다리를 늘어뜨린 더미를 통해 실습할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몇 시간에 걸친 실습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영상으로 본 상황이 내 앞에서 일어난다면 그 코스츔을 입고 있던 분들처럼 용감하게 앞으로 나설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그럴 용기가 쉽게 생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전처럼 정말로 아무 것도 몰라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뭐라도 할 수는 있는 상태에서 용기를 낼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행동이 달라질 겁니다. 하지만 부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기부터는 세상의 규칙을 정하고 실행하는 입법과 행정의 임무입니다.